법현스님 -신간서적안내 -한국의불교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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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주소 : http://ww.pompae.or.kr/bbs/board.php?bo_table=notice&wr_id=700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06-01-04 13:18 조회9,02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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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패 보존ㆍ현대화 아직 할 일 많아
'한국의 불교음악' 펴낸 법현 스님이 말하는 영산재
범패와 작법무로 이루어진 불교전통의식 ‘영산재’와 범패 악보인 ‘각필악보’를 낱낱이 분석한 <한국의 불교음악>(운주사 刊)이 최근 나왔다.
<한국의 불교음악>은 범패의 이론과 체계 확립을 위해 법현 스님(불교음악연구소장·사진)이 매진한 연구 성과물이다. 2000년 발견된 <묘법연화경> 각필악보에 대한 연구 성과도 포함됐다.
이 책을 완성하기 위해 법현 스님은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 대만 중국 등을 돌며 불교의식 관련 자료들을 찾아냈다. 책 발간을 계기로 지은이 법현 스님에게 불교음악의 세계와 각필악보 등에 대해 들어봤다.
<묘법연화경>의 각필 흔적을 보고 범음을 들려주고 있는 스님. |
각필악보를 펼쳐놓고 설명하고 있는 법현 스님 |
<묘법연화경>의 각필 흔적을 보고 범음을 들려주고 있는 스님. |
스님은 범패 음악을 오선보에 옮기는 작업도 병행했다. |
2000년 발견한 <묘법연화경> 각필악보를 재현한 두루마리 |
불교음악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표현한 모든 노래’를 말합니다. 크게 나눠보면 전문의식 음악인 범패(梵唄), 일반 의식음악인 평염불(平念佛), 찬불가 등의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지요.
‘범패’는 범음의 가패라는 뜻으로 곡조를 붙여서 경문(經文)을 노래하거나 각종 게송을 불러 부처님의 덕을 찬탄하는 것입니다. ‘평염불’은 신도들이 <천수경> <반야심경> 등을 평성으로 염불하는 것을 말합니다. 1920년 이후 서양음악의 악보인 오선보 형태로 제작된 ‘찬불가’는 현대적인 불교음악으로 볼 수 있지요.
이 가운데 의식음악 범패는 의식무용 작법무와 함께 ‘영산재(靈山齋)’로 구현됩니다. 영산재는 불교음악과 불교무용 대부분의 형태를 완벽하게 보여주는 불교의례입니다.
▲ <한국의 불교음악>은 어떤 책입니까?
97년 <영산재 연구>, 2002년 <불교무용> 등에 이어 보다 상세하게 범패와 불교음악의 뿌리를 밝히기 위해 준비해온 책입니다. 이번 책은 영산재 중에서도 ‘범패’에 대해 집중 연구했습니다.
범패는 입으로 전승된 가락을 배우는 것입니다. 사찰에서 집중적으로 범패를 배우지 않는 한 일반 음악도들이 범패를 배우기는 어렵지요. 범패를 15년 이상 배운 스님들은 신라말 고려초기에 사용됐던 범패 전용 악보인 각필악보를 보고도 다 연주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일반 음악도들은 요즘 범패에서 사용하는 악보인 ‘사성보’ ‘실성보’들을 보고 연주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지요. 그래서 이론적으로 범패를 분석 연구한 <한국의 불교음악>과 함께 서양식 오선보로 범패 음악들을 옮긴 <불교음악감상>도 함께 냈습니다. 입으로 전승돼온 가락을 현대적 악보로 되살려 내 범패 보존 및 현대화를 위한 토대를 마련하고자 작업한 것입니다. 이번에 펴낸 이론서와 악보는 보다 많은 음악도들이 범패음악을 효과적으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 책에서 범패의 악보로 알려진 각필악보에 대해 설명하셨는데요. 각필악보는 어떤 것입니까?
각필(角筆)은 대나무나 예리한 뿔 등으로 한자 옆에 발음이나 해석을 알려주기 위한 목적으로 종이에 자국을 낸 것을 말합니다. 각필을 사용해 기록된 각필악보는 각필로 음의 높낮이 및 음의 길이를 경전 위에 그림처럼 그려 놓은 것입니다. 2000년 10월 우리나라 최초로 성암고서박물관에 소장된 <묘법연화경> 권1과 권8에서 각필악보를 발견했습니다. 이것이 현재까지 발견된 우리나라 각필악보의 최고(最古)본입니다. 이는 동양 최초의 악보로 조선 세종 때 만들어진 유량악보(有量樂譜)인 ‘정간보(井間譜)’ 보다 4백년 정도 앞서서 제작된 것이기도 합니다.
각필악보의 길이는 1~8㎝ 등 다양합니다. 모양도 소리의 흐름에 따라 다르게 표시돼 있습니다. 특히 한자를 4등분해 사성소리에 맞춰 높낮이를 표기하고 있는 점이 사성보와도 연계되면서 선으로 길이와 음높이를 표현한 것은 실선보와도 일맥상통합니다.
▲ 어떻게 각필악보를 발견하게 됐습니까?
범패를 배우던 25년 동안 왜 범패에는 악보가 따로 없을까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해왔습니다. 그러다가 조선 중후기 풍속을 그대로 담아낸 감로탱에서 힌트를 얻었지요. 감로탱에서 연주하는 스님들이 촛불을 밝히고 경전을 들여다보며 범패를 하는 모습이 나타났던 것입니다.
이를 힌트로 저녁 불빛 아래에서 비스듬히 <묘법연화경>을 비춰보자 낮에 찾아볼 수 없었던 각필의 흔적이 드러났습니다. 각필악보를 발견하는데 큰 도움이 된 감로탱은 영산재 의식과 무용, 복식 등을 복원 재현하는 연구 자료로도 큰 역할을 하는 귀중한 자료이지요.
▲ 앞으로의 계획은?
불교음악에 관심들은 많으나 전문연구가는 드뭅니다. 좀더 많은 학자들이 불교음악을 연구할 수 있는 이론적인 토대를 계속 구축해나갈 계획입니다. 그래서 올해도 5편의 불교의식 관련 논문을 국내외에 발표했습니다. 7년 동안 40여 편 정도 내놓았는데영산재를 비롯해 다른 불교의식까지 이론 정비작업을 계속할 생각입니다.
앞으로는 한국의 불교음악은 물론 외연을 넓혀 동양의 불교음악까지 연구하고 싶습니다. 일본 중국 티베트 남방불교에 이르기까지 불교음악을 총 집대성하는 것이 평생의 원(願)입니다.
21세기는 문화의 시대입니다. 1700년을 이어온 한국불교문화에 대한 국내외의 관심들을 고취시키기 위해 보다 많은 공연을 선보이고 싶습니다. 올해도 일본 네덜란드 벨기에 독일 등에서 공연했습니다. 내년에는 2월의 오스트리아 공연이 예정돼 있고, 7월 이탈리아 등 다수의 유럽공연을 기획 중입니다.
2005-11-02 오후 3:07:00글=강지연 기자ㆍ사진=박재완 기자jygang@buddhapia.com
불교음악』 『불교음악감상』 펴낸 법 현 스님
“영산재 대중-세계화에 최선” 석가모니 부처님이 영축산에서 운집한 대중에게 설법할 때 천향(天香)이 가득하고 하늘에서는 꽃비가 내리고 하늘음악이 울려 퍼졌다고 한다. 모든 불보살과 신중도 자리를 함께 하며 환희심을 냈을 만큼 영축산의 대법회는 법열이 넘쳐났다. 영산재는 바로 이 영산회상 당시를 상징적으로 재현한 의식이다. 음악과 무용, 장엄이 어우러져 종합 예술의 성격을 띠고 있는 영산재는 우리나라 전통 불교예술의 핵심이 농축돼 있으나 범패, 작법무 등 영산재의 의식 절차와 소리, 몸짓은 복잡하면서도 어려워 전수자와 이수자가 적어 전승의 한계를 갖고 있는 실정이다.
불교음악연구소장 법현 스님은 영산재의 이해와 전승을 위해 예술학 차원에서 연구를 지속해 온 스님이다.『영산재 연구』와『불교무용』을 통해 영산재의 대중화를 모색했던 스님은 최근 『한국의 불교음악』과『불교음악감상』을 통해 음악 차원에서의 영산재를 조명했다.
“영산재 시연을 제대로 할 경우 3일이 소요되지만 최근 대부분의 영산재는 길어야 하루 정도입니다. 현대시류에 따른 것이지만 이대로 가면 영산재 전승은 한계에 부딪칠 수밖에 없습니다.”
직접 가르침을 전하고 받는 실질적인 전승의 형태도 중요하지만 책을 통한 기록의 전승도 중요하다는 게 법현 스님의 생각이다. 『한국의 불교음악』은 영산재에 쓰이는 음악에 대한 세부적인 조명은 물론 성암고서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던 ‘묘법연화경’에서 발견한 각필악보와 조선시대의 감로탱화에 나타난 영산재복식까지도 상세하게 서술하며 영산재 발자취까지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다. 특히『불교음악감상』은 영산재에 쓰이는 범패 악보 28곡을 채보해 오선악보로 기록했다.
“오선악보로 채록된 28곡은 후학들을 위한 측면도 있지만 영산재 음악의 현대화와 다양화를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누구든지 이 악보를 토대로 다양한 편곡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법현 스님은 지난 2003년 서울 국립극장에서 올린 ‘영산작법-니르바나’를 통해 현대와 전통이 조화된 종합예술의 가능성을 선본인 바 있듯이 전통의식의 영산재 보존은 물론 종합예술로의 승화도 기대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각지에서 수집한 영산재 관련 500여개의 비디오 테이프와 카세트 테이프 2,000여개를 면밀히 검토하고 있는 법현 스님은 앞으로도 영산재 연구에 더욱 박차를 가한다는 계획이다.
“미국, 오스트리아, 독일 등 세계 각국에서 공연을 했지만 아직도 부족한 점이 많다”며 “영산재의 역사적 고찰과 현대적 조명이 좀더 이뤄져야 명실상부한 영산재가 우리 문화 속에 자리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채한기 기자 penshoot@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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